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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번뇌

Dong E (東夷) 2009. 8. 18. 08:03

108이라는 숫자를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불교에서 말하는 번뇌의 개념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108에 대한 설명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두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단순한 질문 같지만 답변은 대단히 복잡하고 어렵습니다.

 

먼저 불교에서 번뇌는 우리의 몸에 있는 감각기관이 어떤 외부의 대상과 접촉함으로 생겨난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갖고 있는 감각기관은 6가지가 있는데, 불교에서는 6근(根)이라고 해서 눈(眼), 귀(耳), 코(鼻), 혀(舌), 몸(身), 마음(意)으로 설명합니다.

 

이 6근은 저마다 접촉하는 대상이 있는데, 이렇게 6근이 대상과 접촉하면서 우리의 심리 작용, 행동 작용이 생기는 것이지요. 그 대상을 6경(境)이라고 하는데 색깔이나 형태(色), 소리(聲), 향기(香), 맛의 요소(味), 촉감의 요소(觸), 마음으로 파악되는 원리(法) 같은 것입니다. 6근과 6경이 접촉하면서 상호 작용으로 번뇌가 일어납니다. 6근의 상호 작용은 ‘좋다(好)’, ‘나쁘다(惡)’,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다(無記)’ 라는 판단으로 나타납니다. 여기에서 18가지의 번뇌가 생깁니다(6×3=18).

 

반면에 6경은 ‘괴롭다(苦)’, ‘즐겁다(樂)’,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다(捨)’는 세 가지 감정을 일으킵니다. 여기에서도 18가지의 번뇌가 일어나지요(6×3=18). 6근과 6경의 36가지 번뇌가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에 걸쳐 모두 108가지의 번뇌를 일으킨다는 것이 간단한 백팔 번뇌 내용입니다(36×3=108).

 

다른 설명은 부파 불교 시대에 등장한 어려운 아비달마(阿毘達磨) 교리의 부분인데, 인간의 잠재적인 98종의 번뇌와 표면적으로 나타난 10종의 번뇌를 더하여 108번뇌를 말하고 있습니다. 잠재적인 번뇌를 수면(隨眠)이라고 합니다. 수(隨)란 항상 중생을 따라 일어나 마음을 어지럽게 만든다는 뜻이며, 면(眠)이란 그 작용이 너무 미세하여 알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번뇌가 우리들 마음의 표현으로 겉으로 드러나기도 하지만, 대개의 번뇌는 마음 깊은 곳에서 나쁜 성격이나 장애로 잠재하고 있다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아비달마의 학자들은 이 수면을 생존 본능을 일으키는 근본이라고 했고, 악을 일으키는 근본이라고도 했지요. ‘번뇌의 근본’ 정도로 이해하면 되는데 모두 98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질문하신 것처럼 불교에서는 많은 번뇌를 표현할 때 흔히 팔만사천 번뇌, 백팔 번뇌를 얘기합니다.

 

8만 4천이라는 숫자는 상징적 표현이지만 너무 막연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에 반해서 108이라는 숫자는 말씀드렸듯이 상당히 체계적인 교리 연구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108이라는 숫자는 중생들이 갖는 모든 번뇌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말입니다. 절은 번뇌를 제거하기 위한 수행법이자 참회의 구체적인 방법입니다. 번뇌를 끊는 것이 불교적 수행의 목표라면 백팔 번뇌를 제거하는데 백팔 배와 참회는 꼭 필요한 것입니다.

 

이렇게 백팔 배나 백팔 참회의 108은 백팔 번뇌의 108과 같은 의미입니다. 다른 종교나 철학, 사상에서도 그렇겠지만 유난히 불교에서 숫자와 연관된 가르침이 많습니다. 3법인(三法印), 4성제(四聖諦), 6바라밀(六波羅密), 8정도(八正道), 12연기(十二緣起) 같이 숫자화 된 교리가 많지요. 이것은 특별한 이유라기보다 현실적인 측면이 반영된 것입니다. 불교가 발생한 인도는 원래 수학이 발달된 곳입니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아라비아 숫자도 인도에서부터 출발했으니까요.

 

많은 사람들은 숫자로 표현되어지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쉽게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법수(法數)라 불리는 이 숫자들은 불교가 일반 대중에게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가르침을 펴는데 많은 공헌을 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서울 정혜사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