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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Dong E (東夷) 2015. 7. 21. 06:27

- 참 빨랐지 그 양반 -

 

시인: 이정록  

               

신랑이라고

거드는 게 아녀

그 양반 빠른 거야

근동 사람들이 다 알았지

면내에서

오토바이도 그 중 먼저 샀고

달리기를 잘해서 군수한테

송아지도 탔으니까

죽는 거까지

남보다 앞선 게

섭섭하지만 어쩔 거여

박복한

팔자 탓이지

읍내 양지다방에서

맞선 보던 날

나는 사카린도 안넣었는데

그 뜨건 커피를

단숨에 털어 넣더라니까

그러더니

오토바이에 시동부터 걸더라고

번갯불에

도롱이 말릴 양반이었지

겨우 이름 석자

물어 본 게 단데 말이여

그래서

저 남자가 날 퇴짜 놓는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어서 타라는 거여

망설이고 있으니까

번쩍 안아서 태우더라고

뱃살이며 가슴이 출렁출렁하데

처녀적에도 내가 좀 푸짐했거든

월산 뒷덜미로 몰고 가더니

밀밭에다

오토바이를 팽개치더라고

자갈길에 젖가슴이 치근대니까

피가 쏠렸던가 봐

치마가 훌러덩 뒤집혀

얼굴을 덮더라고

그 순간

이게 이녁의 운명이구나 싶었지 부끄러워서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는데

정말 빠르더라고

외마디 비명 한 번에

끝장이 났다니까

꽃무늬 치마를 입은 게

다행이었지

풀물 핏물 찍어 내며

훌쩍거리고 있으니까

먼 산에다 대고

그러는 거여

시집가려고 나온 거

아녔냐고

눈물 닦고 훔쳐보니까

불한당 같은

불곰 한 마리가

밀 이삭만 씹고

있더라니까

내 인생을 통째로 넘어뜨린

그 어마어마한 역사가

한순간에 끝장나다니

하늘이 밀밭처럼 노랗더라니까

내 매무새가 꼭 누룩에 빠진

흰 쌀밥 같았지

   

얼마나 빨랐던지

그때까지도

오토바이 뒷바퀴가

하늘을 향해 따그르르

돌아가고 있더라니까

죽을 때까지

그 버릇 못 고치고 갔어

덕분에

그 양반 바람 한번

안 피웠어

가정용도 안되는 걸

어디 가서 상업적으로

써 먹겠어

정말 날랜 양반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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