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 <인도기행>을 읽었다.
여행은 1989년 11월부터 3개월 동안 불교 성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스님이 본 인도는 한 마디로 '삶과 죽음을 넘어선 나라'다.
인간이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이 죽음이고,
이 죽음을 극복했을 때 비로소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인식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듯하다.
진정한 종교인은 종교 그 자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
마음에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라.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기쁨이 있소.
하나는 받는 기쁨이요, 다른 하나는 주는 기쁨이오.
그대는 이제 받는 기쁨에 서 주는 기쁨의 뜻을 알게 되었소.
받는 기쁨은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되고, 또 그것을 지키려는 괴로움으로 변하기 쉽다. 그러나 주는 기쁨은 그 자체가 욕망의 소멸이며 나누어 가짐에서 오는 충만이다.
퍼낼수록 맑게 고이는 것이 자비의 샘물이니까(불경).
세상에는 두개의 지우친 길이 있다.
수행자는 그 어느 쪽에서 기울어져도 안 된다.
하나는 관능이 이끄는 대로 욕망과 쾌락에 빠지는 일인데, 이것은 천하고 저속하며 어리석고 무익하다.
다른 하나는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일에 열중하는 고행인데, 이 또한 괴롭기만 할 뿐 천하고 무익하기는 마찬가지다
수행승들이여.
나는 이 두개의 지우친 길을 버리고 올바른 길, 중도를 깨달았노라.
이 중도에 의해서 통찰과 인식을 얻었고, 평안과 깨달음과 눈뜸과 열반에 이르렀노라
그럼 중도란 무엇인가.
그것은 여덟 부분으로 이루어진 성스러운 길(八正道)이다(전법륜경).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면 삶에 진실이 따르고, 그 질서를 등지면 삶이 황폐해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리로 가는 길은 따로 없다. 어떤 경로를 통해서도, 어떤 종교나 종파로도 진리에 이를 수는 없다.
진리는 무한하고 무조건적인 것이므로 그것을 조직화해서는 안된다(크리슈나무르티).
참으로 산다는 것은 당신이 집착하고 있는 모든 것을 버릴 때만 가능합니다.
그래야 하루하루가 새로운 날이 됩니다. 당신은 날마다 죽으면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크리슈나무르티)
우리는 날마다 죽으면서 다시 태어나야 한다.
만일 죽음이 없다면 삶 또한 무의미해질 것이다.
삶의 배후에 죽음이 받쳐 주고 있기 때문에 삶이 빛날 수 있다.
삶과 죽음은 낮과 밤처럼 서로 상관관계를 맺는다.
영원한 낮이 없듯이 영원한 밤도 없다.
낮이 기울면 밤이 오고 밤이 깊어지면 새날이 가까워진다.
살때는 삶에 전력을 기울여 뻐근하게 살아야 하고, 일단 삶이 다하면 미련 없이 선뜻 버리고 떠나야 한다.
순간순간 새롭게 태어남으로써 날마다 새로운 날을 이룰 때, 그 삶에는 신선한 바람과 향기로운 뜰이 마련된다.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고 가는 나그네인지 때때로 살펴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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